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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원광사'''
'''● 월간원광사''' ↔ [[원광사]]
==원불교용어사전==
==원불교용어사전==
* 월간원광[月刊圓光]
* 월간원광[月刊圓光]

2023년 7월 25일 (화) 09:34 판

● 월간원광사원광사

원불교용어사전

  • 월간원광[月刊圓光]

개요

1949년(원기34) 4월에 설립된 원불교 원광사에서 발행되는 교단 기관지의 하나. 일제강점기 말엽 휴간된 《회보(會報)》를 개제(改題)하여 1949년 7월에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격월간 또는 계간(季刊)으로 발행되어 오다가 월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교화ㆍ교육ㆍ자선 등 각 방면에 걸친 원불교의 활동 상황과 종법사의 법설, 교리 연구논문 및 해외소식ㆍ신앙수기ㆍ시ㆍ수상ㆍ타종교 소개 등이 수록된다.

역사

교단 제1대 제1회 기념총회 이후 각 지역의 교도들은 주로 총부에 머무르는 소태산대종사의 법설을 직접 듣는 것과, 자신들의 공부정도에 대한 점검을 받고 싶어했으며, 이러한 염원을 해소할 방안수립이 요청되어 기관지인 《월말통신》을 발행하게 된다. 하지만 《월말통신》은 복사판으로 제34호(1930년 음력 12월)까지 발행하다가 교서 편찬 등 사무 관계로 부득이 15개월간 중단되었다. 1932년(원기17) 음력 4월에 제35호부터 다시 발행된 《월말통신》은 제36호(1932년 음력 5월)부터는 《월보(月報)》로 개제(改題)하고, 전음광의 주간 아래 등사판으로 제47호(1933년 음력 5월)까지 발행되었다.

그러나 《월보》는 일제 당국으로부터 출판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적발되어 제48호 전부를 일경(日警)에게 압수당하고 폐간되고 만다. 이에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1933년(원기18) 9월, 총독부 당국의 정식 허가를 얻어 월간 《회보》를 창간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보》의 발행은 1940년(원기25) 제2차세계대전이 급박해지면서 계간으로 바꾸었다가 1941년(원기26) 1월, 통권 제65호를 마지막으로 일본의 언론탄압정책과 경제의 핍박으로 인하여 자진 정간했다. 1945년(원기30) 8ㆍ15광복 이후 《회보》를 계승하여 1949년 7월에 《원광》이라는 제호로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하지만 《원광》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중단되었다가 1951년에 이르러서야 속간된다. 그 후 《원광》은 1969년(원기54) 국가의 ‘간행물 일제 정리’ 방침에 따라 계간으로 등록하고 제63호(1969년 10월 20일)부터 국가의 공인을 받은 정기간행물로 발행을 시작했다. 1984년(원기69) 8월호부터 월간 체제로 전환했으며, 통권108호(1984년 9월 20일)부터는 편집체제를 세로편집에서 가로편집으로 변경 발행했다.

《원광》이 계간에서 월간으로 발행됨에 따라 원광편집업무(원광편집실)와 인쇄업무(원광사)를 분리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원광사’에서 ‘월간원광사’로 독립시켰다. 이로써 1955년(원기40) 원광의 자영인쇄시설을 갖추기 위해 시작된 인쇄소 원광사와 잡지사 월간원광사의 독립운영이 시작된다. 월간 《원광》은 2008년(원기93)년부터 사옥을 서울회관으로 이전함으로써 창간 이후 59년, 통권 402호까지의 익산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책을 발행하게 되었다.

의의

월간원광은 원불교신문과 더불어 교단을 대표하는 기관지의 하나로, 원불교 문화와 출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등 ‘원불교 문화교화’의 소임을 해왔다. 특히 《원광》은 월간지로서 원불교와 주변 종교 및 철학ㆍ사상 등을 소개하고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종교와 문화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해 왔다. 〈權正道〉